나보다 오래 살 수도, 더 짧게 머물 수도 있는 조각
삶은 한시적이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짧은 생애보다 더 긴 무언가를 남기고자 한다. 마치 영원히 살아 현재 가진 것을 끝없이 누릴 수 있는 듯 물질에 영원성을 부여한다. 망가진 것은 떼어내고, 덧입히고, 고치고, 복원하여 처음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. 되돌리기 어려운 것은 버리고 새롭게 취하기도 한다. 그러나 버린 것은 당장 눈앞에서만 사라질 뿐 어딘가에서 계속 떠돈다. 그렇게 변화를 차단하는 일은 오히려 삶을 끊어내고, 마치 미라처럼 죽은 상태로 계속 존재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.
나는 조각이 나와 같은 시공간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, 끊임없이 변화를 겪을 수 있는 상태로 둔다. 생명체가 태어나 성장하고, 변화하고 늙어가며 언젠가 끝을 맞이하듯 조각 역시 하나의 생애주기를 갖길 바란다. 수많은 외부 요인에 의해 새로운 것이 덧붙여지고 점점 자라나다가, 빛과 물을 머금은 채 서서히 균열이 생기고 풍화되어 일그러지며, 분해되어 녹아내리고, 땅속으로 스며드는 과정을 거친다. 이렇게 변화하는 존재는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현재의 상태를 더 열심히 눈에 담게 하고 강렬한 순간으로 기억하게 만든다. 오직 지금만 볼 수 있는 것에 더 매료된다. 우리는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. 그러니 지금 잘 봐둬. 잘 기억해줘.
시간이 흘러 나의 생이 끝났을 때, 나의 부재로 인해 의미를 잃게 되는 것들은 남기고 싶지 않다. 그러나 나에게서 끝나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들이 있다. 오래 기억해야 할 공동의 기억들,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, 도시 속 터전을 잃어가는 비인간 생명종들, 쉽고 빠르게 소비되며 무수히 쌓여가는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…. 나를 넘어선 이야기들이 더 많은 이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전시장 밖으로 나선다. 도시의 일부로 존재하게 된 조각은 하나의 고정된 장면으로 머물지 않는다. 끊임없이 변화하는 배경 앞에 서 있다. 공간을 떠도는 사람들, 자리를 잡고 자라나는 식물들, 그 주위를 맴도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함께 만들어갈 경관을 상상한다. 다양한 이들의 시간이 이어지고 축적될 수 있는 조각에게 긴 생애를 살아가도록 한다.
사라지지 않아야 할 것은 자꾸 소멸하고 남지 말아야 할 것이 계속 남아있는 이 땅에서, 나는 무엇을 남길지 고민한다. 내가 남기는 것들이 물리적 형태를 넘어 이야기로, 행동으로, 더 나아가 생태적 관계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집중하며, 기억이라는 또 다른 장소에 뿌리내리기를 꿈꾼다.